眞柱임면권박탈~! 임면권한 없는 자에 의해 파면 제적된 동래교회사태 진상규명위를 발족시켜 억울한 폐해를 당한 자들의 누명이 벗겨지기를 바란다. 신임 교통과 총무원장 및 새로 조직된 교단 임원들과 교회본부는 천리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겠다.
천리아 게시판

     
 
.......작성자 천리아 ()
.......제 목 네다바이를 캔다 그 -18 어느 용재의 죽음
.......등록일 2016/1/19 (21:29) 조회 1043
.......첨부파일 jk (2).jpg (201Kbytes)
씁쓸한 죽음 소식을 접했다.
거의 매일 전도청 도보를 실천하던 어느 용재(K교회)의 참변 소식이다.

우린 다달이 5번씩 전도청 참배를 하는데 그 때마다 부산에서 전도청꺼녕 나날이 도보참배한다는 어느 여자 용재분을 만나곤 했다.
핫피를 입고...
때론 박자목을 두드림시로...

어느 날은 전철역까지 같이 동승하기도 한 말없는 그런 용재였다.
아마 천리교내에서 여자 용재로써 가장 많이 실천하는 것 같았던 그 용재(故 이순자선생)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묻지는 않았는데 며칠전 지인과 함께 걸으며 그 용재 선생님의 이야기를 물었더니 아직 몰랐냐고 묻는다.

왜 뭔 일이 있었냐고 하니까.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오데서 그런 사고를 당했냐고 했더니 전도청에서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밤에 참사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 분이 전도청에 도착할 무렵은 항상 저녁근행을 전후한 시간인데 그날은 좀 더 늦게 도착하셨던 것 같다.  

경찰이 조사하며 합피 입은 천리교인임을 알고 전도청에 연락하니 4명이 내려왔더라는 이야기꺼녕~~~

전도청에서 내려오는 대로변 큰 간판까지는 차량 통행이 한가한 곳이다.
그런데 며칠 전 보니까 길 한쪽에 회색 콘테이너박스가 덩그렇게 놓여진 것을 보고 '어? 참 위험하네'라 말했었는데...

또 그곳은 전도청 김해시대가 열리고부터 무사통행을 기원하며 신명을 알리기 위한 천리왕님의 깃발이 천리교 간판에 함께 했었는데 기어이 교단 총무원에서 철거시킨 곳이기도 하다.

전도차에 신악가 튼 것과 깃발철거를 내용증명에 담아 보낸 교통나으리...
경찰에서 총무부장은 허주사를 대신해서 자기가 시켜서 한 것이라 진술했고 누가 철거해 가는걸 두어번 목격했다니 속 뵌다.

교단의 막무가내 철거에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이 깃발을 손상시키는 자에게 천벌을 내리게 하소서~!'라 써 붙였겠는가
이후 얼마 안되어 답을 얻긴 했지만 천리교인이 천리왕님의 깃발을 함부로 훼손시키고도 모본 운운하는 길의 정체성은 오데 있는지 어이상실이다...

만약 천리왕님의 깃발이 그대로 존재했더라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 걸 믿는 게 곧 신앙이지 않을까 싶다.  

천리교 포교는 길 걷는데서부터 시작이다?
언젠가 어느 용재가 첨 포교나왔을 때 어떻게 포교하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 [걷는 것이 포교]라 말했었는데 그 용재분이 얼마전 30년이 지났음에도 허회장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게 정답임을 자기는 깨닫고 있다고 했었다.

요즘 나도 어깨띠 메고 네댓시간씩 걷는 편이다.
전도청까지 걷는 것도 다달이 두 번씩 편도 혹은 왕복 실천을 10년 간 했었고 전국일주도 술찮이 했다.

열심히 하는 어느 용재는 빗속을 걸으며 화물차에 바쳐 논바닥에 쳐박혀 정신을 잃었으나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신 분도 계신다.
박자목이 베낭을 뚫고 튕겨나갈 정도의 충격에 그나마 생명에 지장이 없는 수호에 감격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걷는 용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차량이 오는걸 보고 마주 걸어야되는데 순방향으로 걷는 용재분들이 이외로 많았다.

오는 방향은 자기 눈으로 차량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순간적 본능적으로 피할 수라도 있겠지만 순방향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들 당부를 하는 편이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학생들이 차량을 보고 걸었더라면 참살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

2012년 전도차 구입이전에는 무조건 걸었다.
그러나 전도차를 타고나니 잘 걸어지지가 않았는데 걸어야겠다고 맘먹고 실천하는 중에 이외의 부보를 접했던 것이다.

11월 30일 밤에...
며칠 전 벌써 고인을 위한 50일제도 모셨단다.
부산에서 전도청까지 거의 매일 같이...
집에 돌아가면 밤 12시가 예사라 한다.

왜 밤 늦게꺼녕 걷느냐고 물었더니 부산역에서 전도하는 꾼들이 밤에 실천해야 수호가 많이 난다고 해서 그랬단다.
조석근행 밀쳐 놓고 늦은 밤꺼녕 무리하게 가정일 제쳐놓고 수호? 그런 거 절대로 없으니 가정 잘 다스림시로 조석근행 충실하며 여분으로 전도 구제에 나서는게 용재의 사명이리라.

가정 살림은 안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참사후 가족들이 왜 천리교는 걷는 고생을 죽도록 시키느냐며 울 옴마 천리교 믿어 고생만 하다 죽었다며 애통해 하더란다.

얼마 전에는 전도청 인근에 사는 김해 모용재의 남편이 등산갔다 실족하여 실종된지 몇 달만에 찾아 장례를 지냈다는 소식도 접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열심히 하여 수호를 받자고 애써 고생하는데 아무리 죽는게 수호?라지만 같은 용재로써 가슴 아픈 일이다.

전도청 참배를 수년간 해 온 그런 용재가 죽었다면 전도청 조령전에라도 모시고 안타까움을 표해야되는건 아닌지 모리겠다만 그 소식을 이제사 들어 안타깝다.

만약 천주교 같은 정통종교에서 길을 위해 죽으면 성인으로 예우해 준다지만 이 길에서 신명을 전하고 신을 위해 죽을 고생하다 죽었더라도 그야말로 인연이 더러버 죽었담시로, 내 시키는대로 안해서 죽었담시로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비난 안 받으면 다행인 셈이다.

신의 일을 보다가
신의 심부름꾼으로써 사명을 다하다 죽었다면 순직이요 순교인 셈인데 말이다.

길 걷는 실천하신 분...
자전가 타고 실천하는 분...
정말 조심하십시오.

오래전이지만 진영의 모교회장과 진해의 모소장이 자전거 전도 나갔다가 화물차 백미러에 바쳐 숨진 사고가 잇달아 일어난 적이 있다.

자전거 탄 높이와 백미러의 높이가 얼쭉 같다는데...
나도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다 하마터면 골로 갈 뻔 한 적이 몇 차례나 된다.

당시 배교통이 서울전도청에 찾아 와 전도청 김해시대가 열리면 천마는 소장이므로 전도청 소속이지만 근행봉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당번 뿐 아니라 청장실에 들어가는 일이 없게 교단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며 전달해 왔었다.

교단에서 전도청을 배척하여 아무도 찾지 않았던 서울 전도청 시대 때는 신찬 철찬 및 좌근부터 후반까지 근행은 물론이거니와 신전청소 사택청소 등을 도맡았었는데...

서슬퍼런 교단 결정에, 전도청까지 걷기로 작정하여 다달이 편도 한 번 왕복 한 번을 실천했었다.
왕복으로 걸을 때는 약 74km의 길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그로기 상태가 되었고 때론 위험천만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땐 잘 몰랐다.

전도차량으로 다니다보니 정말 아찔한 일임을 느꼈다.
아무튼 역방향 걷기를 명심하시어 이런 참변이 재생되지 않기를 기원 한다.

삼가 故 이순자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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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플라이~! 비록 [烹] 당해도 좋다. 팀이 살 수 있다면... 아~! 통재여~! 제발 이 사건의 행악질이 만천하에 밝혀져 乙의 억울함을 풀 수 있다면 좋겠다. 동래사태 진상규명위를 발족시켜 주기 바란다.